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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벌> 관람기

  • 작성자박성배
  • 작성일2019-09-29
  • 조회수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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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5일 저녁 7시 30분에 대전 예술의 전당 앙상블홀에서 <죄와벌>을 봤다. 공연 시간만 2시간 가까이 되는 대작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벌>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자유분방하게 각색한 작품이었다.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독특하게 무선 송수신 기능을 갖춘 스크린과 카메라를 활용한 이른 바 ‘연쇄극’ 형식을 택하고 있었다. 기존의 ‘연쇄극’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미 녹화해 놓은 영상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카메라를 통해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 비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번 <죄와벌>의 무대는 회전식인데 더해 2층으로 만들어졌으며 카메라를 통한 영상이 비치는 스크린 역시 회전 무대 위 세트의 윗층과 아랫층에 각도를 달리해서 설치되어 있었다. 배우들은 물론 카메라맨도 충분한 연습을 한 듯 무대 연출도 영상 연출도 매끄럽게 이어졌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무선 전파 송수신이 매끄럽지 못했던 까닭에 디지털 영상이 깨진다든지 영상과 소리의 동기화에 문제가 좀 있기는 했으나 작품 자체에 큰 흠이 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설 <죄와벌>을 완독하지 못했다. 전체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것은 학생 시절에 교육 방송에서 TV 드라마로 만든 것을 본 적이 있어서이다. 소설 자체는 부분적으로 읽은 일이 있다. 도끼로 사람을 죽인다는 설정이 대단히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고 다소 지루한 심리 묘사가 장황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이번 대전 예술의 전당 <죄와벌> 공연에서는 원작의 주제 의식을 충실히 담아내면서 자본, 곧 돈이 중시되는 오늘날 세태에 맞는 해석이 돋보였다.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대사보다 카메라로 잡아낸 영상 속 배우의 표정 및 몸짓, 영상의 구도, 조명과 흔들림 등과 같은 미리 연출된 영상 표현 방식으로 주로 표현하고 있다. 카메라로 담아내는 영상이 무대 위 대형 스크린으로 확대되어 비칠 때는 관객들에게 배우들의 표정과 움직임이 더욱 세밀하게 전달된다. 이런 점에서 이번 <죄와벌>의 표현 방식은, 배우는 물론 연출자 관점에서 연극의 전형적인 연기에 더해 카메라를 통해 담기는 영상에서 주의해야 할 연기 특성까지 고려하도록 만들었을 터이다. 이미 연출되어 녹화된 영상을 대형 스크린에 트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 현장에서 연기하는 배우를 실시간으로 카메라를 통해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 비치게 한다는 점에서 연극의 현장성이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관객석에 앉은 관객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무대 뒤 숨겨진 세트 공간에서 연출되는 장면을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무대 위 스크린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고정된 무대 공간과 관객의 시야’라는 물리적인 한계이자 전통적인 연극의 표현 및 수용 메커니즘에 변화를 주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시도는 충분히 가치 있고 흥미로운 실험이었다고 생각한다.
현대적인 해석과 과감한 변주가 돋보인 인물들의 연기는, 원작인 <죄와벌>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일조했지 싶다. 원작에서는 ‘경제적인 빈곤’이 중요한 배경이긴 하나, 그보다 번뇌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한계가 더욱 강조되어 있는 듯이 느껴지나, 이번 연극 공연 <죄와벌>에서는 초인 정신, 곧 ‘비범한 인간’의 개념과 같은 비이성적이며 정신 분열증적인 사고의 흐름을 구구절절히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 인물들 간의 관계 설정을 능숙하게 인용하면서도, 인물들의 성격을 파격적으로 변주함으로써 무겁고 지루하지 않게 원작의 주제 의식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새로운 해석과 실험적인 표현 형식으로 연출된 고전 <죄와벌>을 다시 향유하며 작품 속 인물들과 오늘날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즐거운 관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관객들이 찾아주었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