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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소장유물
명칭 송수연 묘비(宋守淵 墓碑)
시대
소재지 대전광역시 대덕구 읍내동
출처 대전금석문
작성일 2005-01-26
조회 4330
첨부
상세정보 찬 자 : 宋守淵 서 자 : 李翊會 규 모 : 전체높이 270cm, 비신 높이 167cm, 비신 폭 62cm, 비신 두께 32.5cm 군의 휘는 수연(守淵)이고, 자는 백인(伯仁)이며, 은진(恩津) 사람이다. 자호를 송오(松塢)라 하였는데 대개 늦도록 푸르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문정공 동춘 송선생(文正公 同春 宋先生) 준길(浚吉)의 5세손이다. 조부는 요보(堯輔)인데 서윤(庶尹)을 하였고 이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아버지는 정흠(鼎歆)이니 이조참의에 추증되었고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로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되었는데 부사 증이참 덕현(府使 贈吏參 德顯)의 따님이다. 군은 영조 을축(英祖 乙丑 : 1745)년에 낳고 순조 임오(純祖 壬午 : 1822)년에 몰(沒)하였다. 나이 11세에 부친을 여의고 종숙부 늑천( 泉) 선생에게 취학하였는데 선생이 일찍이 상소로 상감의 뜻을 거슬려 10년을 죄적(罪籍)에 계시었다. 그래서 군이 과거를 포기하였다가 선생이 복관됨에 이르러서 비로소 과거에 나가 정유(丁酉)년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그 이듬해 처음으로 내직으로는 희릉참봉(徽陵參奉) 중부봉사(中部奉事) 군자감 직장(軍資監 直長) 돈령(敦寧) 사복주부(司僕主簿) 호조 형조 정좌랑(戶曹 刑曹 正佐郞) 제용판관(濟用判官) 공조정랑(工曹正郞) 선혜장용랑(宣惠壯勇郞) 경모궁령(景慕宮令) 첨추(僉樞) 조사위장(曺司衛將) 돈령도정(敦寧都正)을 하였다. 외직으로 고산현감(高山縣監) 해주판관(海州判官) 통천 옥천군수(通天 沃川郡守) 남원 서흥 이천부사(南原 瑞興 伊川府使) 황주 능주목사(黃州 綾州牧使) 경주부윤(慶州府尹)을 하였다. 집에 있을 때는 몸을 지키고 나를 삼가므로 선생께서 칭찬하셨고 벼슬자리에 있어서는 성상께서 읍재(邑宰 : 邑의 長)의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자랑하셨다. 군이 일찍이 말하기를「내가 이와 같이 되었으니 성스런 임금과 어진 스승에게 어찌 거의 큰 허물이 없는 자이겠는가?」라고 하였다. 처는 증 정부인 한산이씨(贈貞夫人 韓山李氏)이니 군수 증이참 규항(郡守 贈吏參 奎恒)의 따님이다. 영조 갑자(英祖 甲子 : 1744)년에 낳아 나이 52세에 몰하여 회덕 당애(懷德 堂崖) 임좌(壬坐)로 된 언덕에 장례지냈으니 군의 선조(先兆)에 따라 한 것이다. 성품이 인자하고 온순하여 시어머니를 섬기매 성의를 지극히 하고 동기들을 대하매 화목함을 극진히 하여 40년 동안 살림살이에 한번도 남편의 뜻을 어긴 적이 없었다. 일찍이 군과 더불어 작은 수레를 끌고 산전을 갈고 나가지 아니하였다. 2남 1녀를 낳았는데 맏이는 계형(啓馨)이니 사마시에 장원하여 현감에 이르렀고 다음은 계영(啓榮)이니 사마시에 급제하여 전에 첨정(僉正)을 하였다. 따님은 안동 권돈인(安東 權敦仁)이다. 계형(啓馨)은 1녀를 두었는데 심정노(沈正魯)에게 출가하였다. 군이 몰함에 있어서 부인과 더불어 무덤이 같고 좌우로 있다. 후세 사람들은 밟지 말고 능멸이 여기지 말며 송수연(宋守淵)의 무덤임을 알아줄지어다. 이것은 송오(松塢)가 스스로 묘표를 지은 것이다. 그 표제(表弟 : 外從) 전의(全義) 이익회(李翊會)는 쓰다. <宋昌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