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대전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합니다

자료마당Data's room

주요소장유물
지명 장안동(壯安洞)
    장안동(壯安洞) 게시글에 대한 등록 이미지
출처 《大田地名誌》(大田直轄市史編纂委員會, 1994)
작성일 2007-06-26
조회 8549
첨부 1111552471.73_장안동.jpg (9.7KB)
상세정보 〔위치〕서구의 최남단(북위 36°10''''35")에 위치한 법정동이다. 동쪽은 금산군과 경계하였고, 서쪽은 오동, 남쪽은 논산군 벌곡면과 경계하였으며 북쪽은 산직동과 경계하였다.
〔유래〕원래 대둔산(大芚山)에 뿌리를 둔 산줄기가 뻗어치어 산수가 장엄하고 아름다워서 생긴 이름이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장씨가 난을 피해 장군봉 아래 베틀굴에서 숨어 3년간 베를 짜며 살다가 비로소 지금의 원장안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하여 원장안이 되었다 하며, 얼마 전까지 이 근처 전답과 산은 거의가 장씨 일가의 소유였다 한다. 〔연혁〕장안동은 백제(百濟) 때 진현현(眞峴縣)에 속했으며 신라(新羅) 때는 진령현(鎭嶺縣)에 속했었다. 고려(高麗) 때는 기성부(杞城府)에 속했으며 뒤에 공주부의 영역이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진잠현(鎭岑縣)에 속했었으며 조선시대 말기에는 진잠군(鎭岑郡)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용암리(龍岩里)를 병합하여 장안리(壯安里)라 해서 대전군 기성면(大田郡 杞城面)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 11월 1일 대전읍(大田邑)이 대전부(大田府)로 승격함에 따라 대덕군(大德郡)에 편입되고 1989년 1월 1일 대전시가 직할시로 승격함에 따라 편입되어 서구(西區) 장안동(壯安洞)이 되었다. 행정동은 기성동(杞城洞) 이다.
<지명>
가마소둠벙〔못〕
〔위치〕원장안에서 하산막(하선학:下仙鶴)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작은 소(沼)이다.
〔유래〕옛날 진산쪽에서 처녀가 이 마을로 가마를 타고 시집을 오다가 가마꾼들이 실족하여 처녀가 이 물에 빠져 숨졌다하여 가마소둠벙이라 한다.
〔특이사항〕지금은 도로 포장을 위해 길을 넓혔으나 전에는 소윗쪽이 좁은 바위벼랑 길이었다.
개지골〔골〕
〔유래〕개호지가 나왔대서 개호지골이라 하던 것을 개지골이라 한다.
길울(길곡(吉谷), 질울)〔마을〕
〔위치〕바리동(八馬洞) 남동쪽으로 높은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유래〕마을이 긴 계곡에 위치해서 생긴 지명이다.
꽃밭재〔고개〕
〔위치〕멍덕봉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의 낮은 부근 용바우에서 안평산쪽으로 통하는 길이다.
〔유래〕봄이면 진달래가 많이 피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대성골〔골〕
〔위치〕마을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큰골이다.
〔유래〕마을에서 가장 깊은 골짝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들무석골〔골〕
〔위치〕하선학 쪽으로 내려가다가 왼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이다.
〔유래〕후미지고 늘 그늘이 져 있어 저녁때 지나는 주민들이 무서움을 느끼므로 무서운 마음을 완화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마근대미골〔골〕
〔위치〕양골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유래〕복수면 쪽 마근대미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여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맥김이재(막현리(莫顯里)〔고개〕
〔위치〕복수면 막현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유래〕막현리라는 이름이 와전되어 ''''맥김이''''재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멍덕봉〔산〕
〔위치〕용바위 마을 남동쪽 가까이에 있는 봉우리이다.
〔유래〕모양이 벌통 위에 씌우는 멍덕처럼 생겼다 하여 멍덕봉이 되었다 한다.
무덤골〔골〕
〔위치〕질울 점말에 가까운 골짜기이다.
〔유래〕이곳에 애장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물통골〔골〕
〔위치〕질울의 세 마을(위에서부터 점말, 아랫말, 물통골) 가운데 맨 아랫 골짜기이다.
〔유래〕질울의 입구가 되는 이곳은 골짜기 입구가 아주 협착하여 마치 물통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바랑골〔골〕
〔위치〕질울 물통골에서 떡갈봉으로 가는 골짜기이다.
〔유래〕중이 바랑을 지고 내려오는 형국이라 하여 바랑골이 되었다 한다.
바리동(팔마동(八馬洞))〔마을〕
〔위치〕원장안 북쪽의 형제산(兄弟山) 밑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유래〕옛날에 말 8필이 복(福)을 바리바리 실어다 줬다는 전설에서 생긴 지명이다. 이 8필의 말이 죽을 먹는 형국으로 용태울 저수지가 생기는 바람에 수몰되고 말았다 한다. 또는 마을 동쪽 저수지에서 안평산(安平山)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여덟마리의 말이 물을 마시는 형국(八馬飮水)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라 한다.
베틀굴〔굴〕
〔위치〕삼보실 초입 장군봉 아랫쪽에 있는 작은 암굴이다.
〔유래〕옛날 장씨가 이 마을에 피난 와서 살 때 이 굴에서 3년간 베를 짜며 살았다 한다.
부엉산 바위〔바위〕
〔위치〕근래 막은 저수지 가운데 솟아있는 암산의 중간 부분에 있는 바위이다.
〔유래〕전에 부엉이가 이곳에 새끼를 치고 서식하며 늘 울곤 했다 한다. 지금은 바위 위에 정자가 세워져 있다.
빈대절터〔터〕
〔위치〕팔마동에서 마주보이는 안평산 중턱에 있는 절터이다.
〔특이사항〕빈대가 많아 폐사됐다 한다.
산막골(산막동(山幕洞), 선학동(仙鶴洞), 선학리(仙鶴里))〔마을〕
〔위치〕해태산(海苔山)의 동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유래〕옛날 마을에 산막이 있었음으로 산막골이라 부르게 되었고, 선인이 머무는 고장이며, 학이 날아드는 형상과 같다하여 선학동이라 부르게되었다 한다.
삼보기도원(三寶祈禱院)〔기도원〕
〔위치〕삼보실에 위치해 있다.
삼보실(삼보곡(蔘寶谷))〔골〕
〔위치〕장군봉(將軍峰) 밑의 골짜기이다.
〔유래〕임진왜란 때에 장씨네가 세 굴속에서 피난을 했고, 그 부근에서 산삼을 캤기 때문에 삼보실이라고 부른다.
〔특이사항〕현재 이곳에 감리교 재단에서 지은 삼보기도원이 자리하고 있다.
상선학(上仙鶴)(상산학(上山鶴), 상선학동(上汕鶴洞))〔마을〕
〔위치〕산막골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씨앗이 바위〔바위〕
〔위치〕원장안 초입의 형제봉쪽에 있는 바위이다.
〔유래〕기둥처럼 나란히 서있는 두개의 바위가 마치 씨아와 흡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왜정 이전에는 두 개의 바위 위를 가로지른 바위가 얹혀 있어 그 형상이 더욱 기묘했는데 왜정 때 그 바위를 파괴하고 한 쪽 기둥까지 깨뜨려 지금은 두 개의 기둥이 원형을 많이 잃은 상태라 한다.
안평산(安平山)〔산〕
〔위치〕서구 장안동과 금산군 복수면 신대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 470.2m이다.
〔유래〕옛날부터 시인 묵객들이 자주 찾았던 명산이다. 옛부터 안평산 밑에 만인이 피난와 살곳이 있다는 뜻으로 안평산하 가활만인(安平山下 可活萬人)이란 말이 이 지역에 널리 퍼져왔다고 한다.
양골〔골〕
〔위치〕하산막의 마근대미 골짝 맞은 편에 있는 작은 골짜기이다.
〔유래〕양지바르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라 한다.
연애골〔골〕
〔위치〕질울 동북쪽 막바지 골짜기이다.
〔유래〕젊은이들이 만나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용바위(용암(龍岩))〔마을〕
〔위치〕바리동 북동쪽 용태울 저수지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유래〕옛날에 용이 마을 앞에 있는 바위를 밟고 승천하였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전한다.
용태울 저수지〔못〕
〔위치〕장안동 관내 계곡에 생긴 저수지이다.
〔유래〕비룡승천혈(飛龍昇天穴)이 있기 때문에 저수지를 막아야 명당으로서의 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특이사항〕1989년경에 완성된 저수지로 오염이 되어 식수로는 사용할 수 없고, 농업용수로만 사용되고 있다.
원골〔골〕
〔위치〕중산막에서 복수면쪽의 원골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원장안(元壯安)(장안(壯安), 장안리(壯安里)〔마을〕
〔위치〕바리동(八馬洞)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장군봉〔산〕
〔위치〕원장안 서북쪽에 위치한 산이다.
〔유래〕산형이 장군의 투구와 갑옷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장안동 느티나무〔나무〕
〔위치〕장안동 배나무로 건너가기 전 도로가에 묻혀서 정자 구실을 못하는 해묵은 느티나무 1그루가 비스듬히 누워있다.
장안동배나무〔나무〕
〔위치〕장안천 건너 산기슭 논가에 있는 300년 묵은 배나무이다.
〔특이사항〕이 나무 밑에는 거리제 지내는 곳이 아직도 남아 있다.
장안수련원(長安修鍊院)〔기관〕
〔위치〕1990년도에 기성국교 장안분교(1969년 1월 23일 개교)가 폐교되고, 대전시 교육청에서 최근까지 그곳을 수련원으로 이용하였다.
〔특이사항〕도심의 변두리에 위치하여 공기가 맑고 소음이 없는 비교적 안정된 수양원으로 단체로 사용할 수 있다.
장안동새마을회관〔회관〕
〔위치〕장안 1통 장안 수련원 위에 있는 새마을회관이다.
〔특이사항〕현재도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영농 교육을 시키고 있다.
장태산(壯泰山)〔산〕
〔위치〕안평산 옆에 있는 산으로 해발 186m이다.
〔특이사항〕장태산 휴양림 임창봉씨가 근년 정상에다가 팔각정을 짓고, 장태산 전망대라고 명명하였다. 주변 경관이 절경이어서 산행하기에 좋은 곳이다.
장래산휴양림(壯泰山 休養林)〔숲〕
〔위치〕서구 장안동 산 67번지에 있는 휴양림이다.
중선학(中仙鶴)(중산학(中山鶴), 중선학리(中仙鶴里))〔마을〕
〔위치〕산막골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다.
〔특이사항〕중산막(中山幕), 중선학리(中仙鶴里)라고도 부르며, 현재는 5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하선학(下仙鶴)(하산막(下山幕), 하선학리(下仙鶴里))〔마을〕
〔위치〕산막골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다.
〔특이사항〕하산막(下山幕), 하선학리(下仙鶴里)라고도 부르며, 현재는 세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한마음복지원(福祉院)〔복지〕
〔위치〕장태산 휴양림 옆에 위치한 복지원이다.
해태산(海苔山)(화태산)〔산〕
〔위치〕서구 장안동과 논산군 벌곡면 만목리 경계에 있는 해발 360m의 산이다.
〔유래〕산의 형태가 불꽃의 모양임으로 해서 이 부근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봉우리에 물독을 묻고 물을 저장한 다음 산 이름을 해태산이라고 하였다 한다.
행상바위〔바위〕
〔위치〕마을 동쪽 안평산 중턱 높은 곳에 돌출한 큰 바위이다.
〔유래〕바위의 모양이 상여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형제산(兄弟山)〔산〕
〔위치〕서구 장안동 입구에 있는 산으로 해발 314.5 m 이다.
〔유래〕산의 두 봉우리가 형제처럼 서 있다고 해서 형제봉(兄弟峰)이라고도 부른다.
<토속>

바리동의 용바우
명덕봉 북서쪽 용바우 마을 입구 가까운 개울에 반석이 넓게 깔려있고 그 밑에 깊은 소(沼)가 있는데 이 소에서 용이 자란 뒤 반석을 기어오르다가 승천을 하려 하던 중 임신한 부인이 보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승천하지 못했다고 하며, 이 때문에 바위 이름을 용바우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것이 마을 이름으로까지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장안동의 해태산
이 산정산 부근에는 지대가 높음에도 늘 물이 나는 습지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옛날부터 이 마을에는 불이 잘 났고 그 원인을 화(火)태산의 물이 마르기 때문이라 마을사람들은 믿었다. 그리하여 잦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화태산 꼭대기에 큰 단지를 묻어 물을 채운 뒤 다시 물속에 간수를 넣은 작은 병을 함께 넣어 두었으며 산 이름도 해태산이라 하고 매년 정월 보름날 풍장꾼들이 물과 간수를 갈아 넣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 민속이 단절되었으며 깨진 단지와 그 속에 있는 간수병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