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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가양2동(佳陽2洞)
    가양2동(佳陽2洞) 게시글에 대한 등록 이미지
출처 《大田地名誌》(大田直轄市史編纂委員會, 1994)
작성일 2008-03-27
조회 8271
첨부 1111537221.23_가양2동.jpg (9.7KB)
상세정보 〔위치〕가양2동(佳陽2洞)은 남으로는 자양동(紫陽洞), 북으로는 대덕구(大德區) 비래동(比來洞)과 연접해 있다.
〔연혁〕가양1동의 연혁 참조
〔특이사항〕행정동으로서의 가양2동은 34통 192반을 관할하고 있으며 1993년 12월 현재 면적은 1.74㎢이며 7,400세대에 26,915명(남 13,592, 여 13,323)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지 명>
가팔공원〔공원〕
〔위치〕가양주공아파트 북서쪽 끝에 있다.
고물개봉〔산〕
〔위치〕내흥룡(內興龍) 북서쪽에 있던 봉우리로서, 지금의 신도아파트가 들어선 언덕을 말한다.
〔유래〕고물개(고무래의 지역어)로 긁어 모아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고물개봉이라고 하였다.
공업진흥청충남지방공업기술원 〔행정〕
〔위치〕동부사거리동남쪽, 신도맨션 남서쪽에 있다.
구세군대전중앙영〔교회〕
〔위치〕동대전중학교와 가양2동 파출소 사이, 가양제일교회에 인접해 있다.
꽃산〔산〕
〔위치〕대전직업훈련원 서쪽에 있다.
〔유래〕봄이 되면 그 산에 꽃들이 만발하여 꽃산이라 하였다.
내흥룡노인정〔노인정〕
〔위치〕대전직업훈련원 서쪽에 인접해 있다.
능성〔터〕
〔위치〕대전직업훈련원과 비룡동(飛龍洞) 비름들 사이에 있다.
대전보건전문대학〔학교〕
〔위치〕남간정사 북서쪽에 있다.
대전직업훈련원〔기관〕
〔위치〕명석고등학교와 대전보건전문대학 사이에 있다.
더퍼리(가팔리(加八里))〔마을〕
〔위치〕흥룡 동쪽 부근에 있었던 마을로서, 지금의 박팽년 유허비와 남간정사 사이 부근이었다.
〔유래〕또는 송우암이 이 남간정사가 있는 마을을 궐리, 신인, 자양과 연결하여 덕포리(德布里)라 했는데 그 뒤 발음이 변하여 더퍼리(덕포리>덥포리>더퍼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특이사항〕 마을이 가양동 벌판의 숲이 우거진 곳에 자리하여서, 잘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출입도 어려웠었다.
동대전초등학교〔학교〕
〔위치〕가양중학교와 임광아파트 사이에 있다.
동대전중학교〔학교〕
〔위치〕동아공업고등학교 북동쪽에 있다.
동대전농협 가양지소〔금융〕
〔위치〕가양국민학교 서쪽, 우암로(尤庵路) 변에 인접해 있다.
동신아파트〔아파트〕
〔위치〕대전보건전문대학과 가양중학교 사이, 조일아파트 우암로 건너편에 있다.
두루봉〔산〕
〔위치〕외흥룡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서, 명석고등학교 서쪽에 있는 산이다.
〔유래〕산의 모양이 둥글둥글하다고 두루봉이라 하였다.
명석고등학교〔학교〕
〔위치〕대전직업훈련원과 비래동 현대아파트 사이의 우암로 변에 있다.
바탕골〔골〕
〔위치〕동대전중학교와 남간정사 사이, 더퍼리체육공원 자리에 있었다.
부성빌라〔빌라〕
〔위치〕동부사거리 동남쪽, JC회관과 공업친흥청 충남지방공업기술원 사이에 있다.
삼덕아트빌라〔빌라〕
〔위치〕JC회관과 공업진흥청 충남지방공업기술원 사이, 부성빌라와 연접해 있다.
새터골〔골〕
〔위치〕흥룡 남쪽, 지금의 흥룡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신도맨션〔맨션〕
〔위치〕동부사거리 남서쪽, 동부사거리와 가양중학교 사이에 있다.
옥정사〔사찰〕
〔위치〕남간정사 동쪽에 있다.
외흥룡노인정〔노인정〕
〔위치〕남간정사 서남쪽에 연접해 있다.
임광하이츠〔아파트〕
〔위치〕동대전초등학교 북쪽에 연접해 있다.
장고개〔고개〕
〔위치〕가양주공아파트와 대전상업고등학교 사이에 있었다.
〔유래〕가양동에서 자양동을 가려면 이 고개를 넘어야 되며, 이 고개를 넘어 인동시장에 장보러 많이 다녔다 한다. 장을 보러 가기 위해 넘는 고개라서 장고개라고 하였다.
조일아파트〔아파트〕
〔위치〕대전보건전문대학 서쪽, 자양로 변에 있다.
중부장로교회〔교회〕
〔위치〕중부사거리 남쪽, 신도맨션과 연접해 있다.
충남보건연구원〔기관〕
〔위치〕동대전국민학교와 명석고등학교 사이에 있다.
텍미산〔산〕
(위치〕외흥룡 동쪽에 있던 산으로서, 지금의 흥룡초등학교와 동대전중학교 사이에 있다.
〔유래〕턱밑의 산이라고 하여 텍미산이라 하였다.
〔풀이〕''''턱>텍''''에서 ''''ㅓ>ㅔ''''는 전설모음화현상이다.
평화맨션〔아파트〕
〔위치〕가양사거리 북서쪽, 동부사거리 남서쪽의 삼각지점에 있다.
한성잉꼬아파트〔아파트〕
〔위치〕동부사거리 남쪽, 자양로(紫陽路) 변에 인접해 있다.
흥룡(興龍)(흥농, 흥룡리)〔마을〕
〔위치〕매봉 동북쪽에 있던 마을로서, 내흥룡(內興龍)과 외흥룡(外興龍)으로 나뉜다. 내흥룡은 대전직업훈련원 부근이며, 외흥룡은 가양사거리 동북쪽, 가양초등학교와 흥룡초등학교 사이 부근이었다.
〔유래〕이곳은 풍수지리적으로 인재가 나을 만한 지형으로 항상 대기만성형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서, 흥할 흥(興)자와 용 용(龍)자를 따서 흥룡(興龍)이라고 하였다. 흥농(興農)은 일본인들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농사나 짓고 살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붙인 지명이다. 또는 송우암이「용은 왕을 상징하는 바 흥룡이라면 왕이 나올 땅이라는 것이니 너무 무엄한 지명이다」하여 흥농(興農)으로 고쳐 불렀다고도 전한다.
〔풀이〕대전의 지명 중에 용(龍)자가 들어가는 곳이 다섯이 있는데, 비룡(飛龍), 용운(龍雲), 용전(龍田), 용두(龍頭)가 그것이다. 이것을 일러 오룡(五龍)이라 하며, 흥룡(與龍)은 이 오룡(五龍)중 하나이다.
흥룡공원〔공원〕
〔위치〕동대전초등학교 서쪽에 연접해 있다.
흥룡초등학교〔학교〕
〔위치〕가양사거리 동쪽, 가양사거리와 옥수맨션 사이에 있다.
<토 속>
가양동의 산제당
가양 뒷산을 꽃산이라 하는데 산중턱에 산제당이 옛날부터 전해온다. 음력 정월 14일 저녁에 행사하는 이 산신제는 가양주민들의 그해 안과태평(安過泰平)을 비는 소지를 올리는 행사로서 이 산제를 지내려면 정월초삼일(음력)에 동네사람들이 모여 생기복덕(生氣福德)이 당하는 자로 유사를 정하게 하니 이를 도가(禱家)라 한다. 그리하여 도가가 정해지면 도가는 정월 11일부터 목욕재계하고 집에는 금줄을 치고 대문밖에 황토를 여섯 무더기로 나누어 표하여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지시킨다. 정월 14일 저녁에 동네사람들 중에 부정이 없는 자들이 모여 풍물을 치고 산제당에 올라가서 치성을 드리는데 밤중쯤 되어 치성을 마치면 횃불을 둘러 표시한다. 그러면 아래에 거북바위에서 모인 동네사람들이 기다렸다 마주하여 거북바위에서 또 거리제를 지내고 풍물을 친다. 이리하여 풍물을 치며 집집마다 돌고 안과태평(安過泰平)을 비는 행사로 흥겹게 그날 밤을 지새운다.
이와 같이 이 지방의 산신제와 거리제 놀이로 이 지방의 단합대회 겸 안과태평 놀이가 지금에 와서는 겨우 정월 14일 저녁에 산신제와 거리제만 지내는데 그치고 그것도 젊은이들은 참여도 않는 실정이다.
<역사인물>
기국정(杞菊亭)
남간정사와 연접해 있다.
조선시대 효종 때,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손님을 맞이하여 시론(詩論)을 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기국정(杞菊亭)은 처음에는 소제동(蘇堤洞)에 있는 고택 연못가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연당(蓮堂)이라 했다가 연못가엔 구기자(枸杞子)와 국화가 무성하게 피어 있어, 유림(儒林)들이 구기자의 기(杞)자와 국화 국(菊)자를 따서 기국정(杞菊亭)이라 하였다. 1927년 가양동으로 옮겨 오늘에 이르렀다.
남간사(南澗祠)
비지정 문화재(非指定文化財) 57호로써 남간정사(南澗精舍) 옆에 있는 사우(祠宇)인데 숙종(肅宗) 23년(1677) 회덕 유생(懷德儒生)들이 이 사우를 짓고 주자(朱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영정을 모시고 석곡(石谷) 송상민(宋尙敏)과 권상하(權尙夏)를 배향하였다.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1967년 보수하였다.
남간정사(南澗精祠)
남간정사는 가양동 곧 흥농에 있는 정자로 효종때 유현(儒賢)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공부하던 곳인데 숙종 12년에 우암이 수석(水石) 사이에 집을 지어 남간정사(南澗精舍)라 했고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 건물이다.
능성(陵城)
가양동(佳陽洞), 자양동(紫陽洞)에서 비룡동(飛龍洞) 비름들 마을로 넘어가는 속칭 『비름들고개』위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310m 정상부(頂上部)에 축조된 테뫼식의 석축산성(石築山城)으로, 평면형태(平面形態)는 남북(南北)을 장축(長軸)으로 하는 장방형(長方形)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산성(山城)의 지형(地形)은 서고동저(西高東低)의 형태(形態)를 하고 있다. 이 산성(山城)은 바로 대전방면(大田方面)에서 옥천방면(沃川方面)으로 넘어가는 『비름들고개』를 감시(監視)하기 위한 목적(目的)으로 축조(築造) 되었다고 판단된다.
이 산성(山城) 내에는 해발 310m의 소봉우리가 남(南), 북단(北端)에 각기 형성(形成)되어 있으며, 남벽(南壁)과 북벽(北壁)은 각기 이 봉우리들을 포용(包容)하고 축조(築造)되었으며, 서벽(西壁)은 주능선상(主稜線上)에 부분적(部分的)인 암반(岩盤)을 이용(利用)하면서 급경사면(急傾斜面)에 구축(構築)되었다. 그러나 동벽(同壁)은 성내(城內)의 공간(空間)을 확보(確保)하기 위하여 해발 300m선 부분까지 내려와 축조되었다. 성벽(城壁)의 대부분(大部分)은 무너져 내려 원상(原狀)을 파악(把握)하기 힘들다. 다만, 남벽(南壁)에서 층수(層數) 6단 정도(程度)의 석축(石築)을 확인(確認)할 수 있다.
박팽년 유허비(朴彭年 遺墟碑)
가양2동의 대전보건전문대학 남서쪽에 있다.
사육신(死六臣) 가운데 한 사람인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이 거주하던 터라고 표하기 위한 비(碑)이다. 현종 9년(1668)에 주춧돌을 모아 비를 세웠으며, 현종 13년 비각(碑閣)을 세우고 장절정(壯節亭)이라고 하였다. 그 후 6.25 때 파손되어 비각만 남아 있던 것을 후손이 중수하고 1975년 관에서 수리하였다.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글씨는 송준길(宋浚吉)이 썼다.
삼매당(三梅堂)
삼매당은 가양동 11번지에 있는 지방문화재(地方文化財)로써 순천박씨 종친회에서 관리하고 있는 삼매당은 인조 22년(1644) 평양(平陽) 박계립(朴繼立)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세운 서당(書堂)이다. 삼매당이란 박계립(朴繼立)의 호로서 그의 호를 따서 당호를 삼매당(三梅堂)이라 칭했다. 삼매당에는 삼매당현판(三梅堂懸板)과 삼매당팔경(三梅堂八景)이 조각되어 있다.
송자대전판(宋子大全板)
대전시 동구 가양동 67에 있는 지방문화재(유형)이다.
송자대전(宋子大全)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문집(文集)으로 215권 102책이 되는데, 헌종 13년 송자대전을 간행한 후 가양동에 장판각(藏板閣)을 짓고 보관했는데 현재 4,483판이 보관(保管)되어 있다.
장절정(壯節亭)
가양동에 있는 유허비 비각명으로서 현종(顯宗) 13년(1672) 박팽년 선생 유허비(朴彭年先生遺墟碑)에 비각(碑閣)을 세워 장절정(壯節亭)이라 하였다. 6·25사변때 파괴되어 비석만 남아있는 것을 박팽년의 후손이 비각을 중수(重修)하였고 1993년에 대전시에서 현문(玄門)과 담장을 중수하였다.
장판각(藏板閣)
대전시 동구 가양동 67에 있는 누각이었다.
1931년 송시열(宋時烈)의 문집(文集)인 송자대전(宋子大全) 목판본(木板本)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정방형(正方形) 벽돌벽에 연와(煉瓦) 박공지붕 건물인데 건평은 약 12평이고 이곳에 보관 중인 목판본은 숙종(肅宗) 43년(1717)부터 영조(英祖) 16년(1792) 사이에 속간(續刊)된 것이다.
정절서원 (靖節書院)
이 서원은 회덕(懷德) 사림(士林)의 청원에 숙종(肅宗 10년:1684)에 창건되었는데 원래는 쌍청당(雙淸堂) 송유(宋愉), 취금헌(翠琴軒) 박팽년(朴彭年), 수옹(睡翁) 송갑조(宋甲祚) 세 분을 향사(享祀)하였다. 그래서 이 서원의「정절(靖節)이란 명칭도 쌍청당(雙淸堂) 송유(宋愉)의「遯世自靖」(숨어살며 세상을 깨끗이 마침)함과 취금헌(翠琴軒) 박팽년(朴彭年)의 「精忠壯節」(한결같은 충정과 장한 절개)함을 기리는 뜻에서 두 분의 표구(表句)에서 한 자(字)씩 따온 것이다. 그 후 동왕(同王) 27년(1701)에 송애(松崖) 김경여(金慶餘)와 석곡(石谷) 송상민(宋尙敏)을 추향(追享)하여서 오현(五賢)을 모셨기 때문에 「오현사(五賢祠)」라고도 하였다. 또한 그뒤 순조(純祖) 22년(1822)에 사우당(四友堂) 송국택(宋國澤)을 추향(追享)하였다.
정절서원(靖節書院)은 대원군(大院喬)의 서원훼철령(書院毁撤令)으로 헐린게 아닌가 추측된다. 그 유허지(遺墟址)는 가양동(佳陽洞)(옛 명칭 興農里)의 남간정사(南澗精舍)에서 산 속의 시민체육공원으로 올라가는 초입의 연못 오른쪽 지대(地帶)(상당한 규모의 터, 현재는 밭)라고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