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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마당Data's room

주요소장유물
유적명 주산동고분군(注山洞古墳群)
위치 대전광역시 동구 주산동
시대 신라시대
소유자
지정종별번호
출처
작성일 2005-02-28
조회 9084
첨부
상세정보 경부고속도로 대전 인터체인지에서 부산 쪽으로 약 1.7km쯤 가면 "질티"터널이 나타난다. 이 터널에는 대전∼옥천간을 왕래하던 고대통로 가운데 하나인 질티고개가 있고, 이 고개 북쪽에 인접하여 백제시대에 축조된 질현산성(迭峴[질티]山城)이 뚜렷한 형적을 이루며 남아 있다. 또한 이 질현산성과 사이에 안상부(鞍狀部)를 두고 동쪽에 연결된 또 하나의 산봉우리[해발 280m]가 있는데, 이 봉우리를 고봉산(古鳳山)이라 부르고 있다. 이 고봉산에도 백제시대의 산성이 축조되어 있다.
주산동고분군은 이 고봉산 동남쪽의 경사면에 분포되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주산동마을에서 서남쪽으로 약 500m 거리에 있으며, 해발 150m 전후의 산기슭에 자생해 있는 소나무 숲에 있다. 산록 하에 있는 평지와 상대높이는 50m∼60m 정도 된다. 고분이 분포된 지역의 동쪽에 접하여 조그만 계곡이 있으며, 계곡을 따라 북북서∼남남동 방향으로 완만하게 경사된 지형을 이용하여 길이 50m, 너비 25m 가량의 구간내에 12기가 1군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남쪽으로 20m 떨어진 지점에서 또 하나의 고분이 조사된 바 있다. 이곳의 고분에 대해서는 1978년 충남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大淸댐 水役地區遣蹟發掘調査報告書(忠淸南道篇)》,1978년, 忠南大博校物館).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하여 이 고분군의 구체적인 실상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주산동고분군은 13기의 소형 석실고분이 한 지역에 밀집된 군집분인데 이들 중에서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 1기이고 나머지 12기는 구덩식돌방무덤(竪穴式石室墳)이었다. 그런데 이 구덩식돌방무덤들 중에는 개석(蓋石)을 덮은 후 한쪽 단벽을 매장 통로로 사용한 소위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이 6기나 존재하였다. 구채적으로 돌방 입구[橫口]의 위치는 석실의 장축이 동서방향으로 놓인 경우에는 동벽이 사용되고 남북방향인 경우에는 남벽이 사용되었다.
돌방[石室] 내부에서 볼 수 있는 시설로서는 굴식돌방무덤에서 관대(棺臺)가 축조되었으며, 한편 구덩이식돌방무덤에서는 석실 바닥의 일부를 장방형으로 구획하여 석괴(石塊)를 깔아 놓았는데 이 시설을 시상(屍床)이라고 부른다. 그 면적은 한 사람의 시신이나 관을 안치할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다. 이 시상의 위치는 입구로 사용된 단벽에서 보아 향좌편에 편재하여 있다. 그러나 시상을 마련하지 않은 고분들은 대개가 바닥면 전체에다가 돌을 깔았다. 이 고분군은 전부가 이미 도굴행위로 인하여 파괴를 입은 상태였는데 제자리에 놓인 상태로 발견된 유물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발견유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토기류이며 그 총 숫자는 45개체분에 해당된다. 즉 부장된 토기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유개식(有蓋式) 작은굽다리접시[小形高杯]들이다. 이들은 굽다리 높이[脚台高]가 2cm 內外로서 매우 낮은 것이 특색이며 굽다리에 간단한 투공(透孔)을 배치한 형식이 포함된다. 뚜껑은 꼭지의 형태가 특징적이면서 그것이 마치 그릇의 밑굽처럼 생겼다. 이러한 작은굽다리접시 중에는 굽다리의 퇴화가 진행되어 뚜껑접시[蓋杯]와 다름이 없는 기형도 나타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적인 토기로서는 소형 세경호(細頸壺) 4개가 출토되었다. 이 세경호(細頸壺)들은 병형토기의 범주속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작은굽다리접시와 세경호의 계통에 대하여는 백제토기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주산동 고분군의 토기중에는 신라적 요소를 강하게 띄고있는 토기가 혼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3호분과 5호분에서 출토된 긴목단지[長頸壺]들인데 이들의 특징은 확대된 수직구연[垂直口緣]에 있다. 이러한 형식의 긴목단지는 6세기 전반으로 편년되고 있는 경주의 호우총(壺杆塚)에서도 출토되었으나, 그 전통은 훨씬 후기까지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기형의 하나이다. 또 하나는 2호분에서 출토된 무뚜껑씩[無蓋式] 굽다리접시인데 이것은 통일신라시대의 고분으로 알려져 왔던 경주 충효리(忠孝里) 1호분에서 출토된 굽다리접시와 동일한 것이다.
위와 같은 사실에서 볼 때 주산동고분군의 성격과 연대에 대하여는 좀 더 시일을 두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단지 출토유물의 상황으로 보아 그 일부가 통일신라시대 또는 그 직전에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는 유물과 동일하게 나타나고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신라 진흥왕(眞興王)이 급격히 영토를 확장해 나가던 시기인 6세기 후반∼7세기 전반에 해당되는 유적이 아닐까 판단하고 있다.
각 고분의 구조 및 특징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1호분
이곳 고분군 중에서는 A급으로 구분할 수 있는 구덩식돌방무덤이다. 이미 도굴로 인하여 뚜껑돌[蓋石]은 완전히 상실되었고 돌방 상부가 노출된 상태이다. 돌방의 장축을 약 12 가량 동쪽 방향으로 두었으며, 돌방의 내부 길이 280cm, 너비는 하부가 120cm인데 비하여 상부는 80cm이다. 즉 좌우측 장벽의 벽면이 내경(內傾)되었으며 횡단면이 사다리꼴을 이루었다. 구조적인 면에서 특수한 점은 석실 바닥을 구획하여 길이 240cm, 너비 70cm의 범위 내에 석괴(石塊)를 한 겹으로 깔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 위치는 서벽과 남벽에 붙여서 구획되었으며 한쪽에 편재되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동쪽 단벽의 폐쇄 방법이다. 이 석실분의 형식은 원래 수혈식에 속하는 분묘이지만 그 매장행위는 뚜껑돌[蓋石]을 덮은 후 동쪽 단벽을 통과하여 출입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로 말미암아 최후로 폐쇄된 동쪽 벽면은 바깥에서 축조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내부 벽면이 정연하게 수직을 이루지 못하고 상부 벽석이 외경되었다.
이것은 낙동강류역의 삼국시대 고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앞트기식돌방무덤의 축조방식을 채용한 것이며 이곳 고분군 중에서도 A급에 속하는 큰 고분들은 대개 이러한 방법을 택하고 있다.
출토유물로는 완형토기로 생각되는 아가리[口緣部] 파편 1개가 있다.
2) 2호분
이곳에 분포된 13기의 고분 중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굴식돌방무덤이다. 1호분에서 서쪽으로 7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돌방 내부의 규모는 길이 270cm, 너비 17cm이며 장축이 22 가량 동남향으로 치우쳐 있다. 돌방 평면이 정방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다른 구덩식돌방무덤의 평면형태와 비교해 보면 훨씬 폭이 넓다.
도굴행위로 인하여 천정 뚜껑돌 2매가 내부에 낙하되었는데, 이 석재들의 크기는 길이 140cm, 너비 60cm∼80cm, 두께 23cm이다. 벽체는 북벽의 높이가 120cm로서 제일 잔존상태가 양호하였다. 돌방의 남벽을 2分하여 그 동쪽 부분을 입구로 삼았는데 그 앞쪽에 돌방길[羨道]를 만들지 않았다. 단지 매장이 끝난 후 바깥에서 이 입구를 석괴로 폐쇄하였을 뿐이다.
돌방 내부는 향좌 편에 한층 높게 관대를 축조하였으나, 도굴자들에 의해 크게 파괴를 입었다. 그 너비는 105cm로써 왼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여 설비되었던 것 같으며 복원된 높이는 40cm이다. 관대 아래의 바닥에서 8개의 토기와 1개의 고드랫돌[紡錘車]이 발견되었으며 그 출토 위치는 북벽에서 40cm의 간격을 두고 한곳에 안치(安置)되었다. 그리고 동벽에 연한 중앙 벽면 아래에서 또 하나의 토기(세경호)가 발견되었다.
출토유물로는 굽다리접시 뚜껑 1, 굽다리접시 몸체 4, 굽다리접시 1, 파수부완(把手) 1, 고드랫돌[紡錘車] 1, 세경호 2개가 있다.
3) 3호분
2호분에서 북쪽으로 5m 지점에 위치한 작은 구덩식돌방무덤이다. 돌방 내부의 길이는 145cm, 너비 50cm, 깊이 55cm이다. 돌방의 장축은 대략 동서 방향이다.
천정 뚜껑돌은 잔존하지 않았고, 돌방 바닥은 돌을 깔았다.
출토유물은 돌방 서쪽 끝부분에서 뚜껑접시[蓋杯] 1조, 굽다리접시 몸체 1, 긴목굽단지 1, 고드랫돌 1, 철제도자 1개가 수습되었다. 또한 북벽 중앙 아래에서 파손된 완형토기(盌形土器) 1개가 발견되었다.
4) 4호분
3호분에서 동쪽으로 4m 지점에 위치한 작은 두덩식돌방무덤이다. 돌방 내부는 길이가 130cm에 불과하며 너비는 60cm, 깊이 50cm이다. 역시 서단 부분에서 작은 뚜껑식단지[有蓋壺] 2조, 작은단지[小形壺] 1, 세경호(細頸壺) 1개가 출토되었다. 서벽에서 약 40cm까지는 석괴를 깔아 바닥을 10cm 가량 높였는데 토기들은 모두 이 시상 위에 놓여 있었다.
5) 5호분 돌방 내부의 길이는270cm, 너비 110cm, 깊이 92cm이다. 장축을 동북∼서남으로 두었다. 도굴로 말미암아 천정 뚜껑돌은 잔존치 않았으며 서북벽이 붕괴직전에 있었다.
돌방의 구조는 1호분과 같은 앞트기식은 아니며 순전한 구덩식돌방무덤으로 관찰되었다. 크지 않은 석괴를 바닥 전면에 깔았다.
출토유물은 서북쪽 장벽하 중앙부분에서 철제도자 2개와 그 북단 쪽에서 굽단지[臺付壺]를 포함한 3개의 토기가 발견되었다. 또 반대쪽 장벽의 남단 쪽에서는 큰 긴목단지[長頸壺] 1개를 비롯하여 작은굽다리접시 수개체분이 대파된 상태로 한곳에서 출토되었다.
6) 6호분
돌방내부의 길이 260cm, 너비 95cm, 깊이 90cm이며 장축의 방향 10 가량 동남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구덩식돌방무덤으로서 4벽 모서리를 서로 맞물리게 구축하였다. 북벽과 서벽에 연하여 20cm 60cm의 구획 내에 석괴를 한겹으로 깔아 시상을 만들었다.
도굴로 인해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매몰토에서 완전 파손된 광구호(廣口壺) 1개를 수습할 수 있을 뿐이었다.
7) 1호분
돌방 내부의 길이 220cm, 너비 80cm∼90cm, 깊이 80cm이며 장축이 남북방향이다. 바닥에 시상을 만들었는데 그 범위는 돌방의 길이와 같으며 서벽에 연하여 60cm의 너비를 이루고 있다. 남벽쪽의 단벽 축조상태가 북벽의 축조수법 보다 엉성한 것으로 보아 남벽을 입구로 사용한 후 바깥에서 폐쇄한 앞트기식이었다고 생각된다. 쪽 모서리 부근에서 돌방의 동북쪽 모서리 부근에서 굽다리접시 뚜껑 1개, 굽다리접시 몸체 2개를 수습할 수 있었다.
8) 8호분
돌방의 내부길이 120cm, 너비 70cm, 깊이 60cm의 소형 구덩식돌방무덤이다. 바닥은 돌로 깔았으며 장축방향은
10 가량 동남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출토유물로는 세경호 1, 굽다리접시 1조 등이 매몰토 속에서 수습되었다.
9) 9호분
돌방의 내부길이 230cm, 너비는 상부 80cm, 하부 110cm 이며 깊이가 120cm이다.장축은 남북방향으로 있다. 벽면의 구조는 좌우단벽이 위쪽으로 내경하여 단면이 사다리꼴을 이루고 있다. 남벽을 입구로 사용한 후 바깥에서 폐쇄한 앞트기식이었다고 생각된다. 바닥은 전면에 걸쳐 석괴를 깔았다. 출토유물로는 매몰토 속에 굽다리접시 뚜껑 1, 굽다리접시 몸체 1개가 수습되었을 뿐이다.
10) 10호분
돌방의 내부 길이 220cm, 너비는 상부가 80cm, 하부가 90cm였고 깊이는 100cm이다. 서·북벽에 연하여 길이170cm, 너비 60cm를 구획하여 바닥에 석괴를 깔아서 시상을 만들었다. 쪽 단벽은 작은 석괴를 갈라 차곡차곡 정연하게 구축하였는데 반하여 남벽은 보다 큰 석괴를 대고 엉성하게 막았다. 역시 앞트기식의 고분으로 관찰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내부의 매몰토 속에서 굽다리접시뚜껑 1, 굽다리접시 몸체 1개 등을 수습할 수 있었다.
11) 11호분
2호분 뒷면에 민묘가 1기가 있는데 11호분은 그 구역내 동편에서 발견되었는데 뚜껑돌은 잔존하지 않았다. 돌방 내부의 길이가 160cm, 너비는 상부가 60cm, 하부가 15cm였고 깊이는80cm이다. 바닥에는 석괴를 깔았다. 장축을 서북∼동남향으로두었으며, 남쪽에 입구를 두었던 앞트기식돌방무덤이었다고 보여진다. 출토유물로는 굽다리접시 뚜껑 1, 굽다리접시 몸체 1개 등이 있다.
12) 12호분
이 고분은 근대 밭으로 경작되는 과정에서 고분의 앞 부분이 반쯤 파괴되었다. 그러나 돌방 바닥의 윤곽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또 전방 천정부에 뚜껑돌 2매가 잔존해 있었다. 돌방 내부 길이가 275cm, 너비는 상부가 60cm, 하부가 90cm이며 천정고는 90cm이다. 장축을 대략 서북∼동남향으로 두었다. 서쪽 장벽을 따라 시상을 시설하였는데 그 너비는 60cm이며 길이는 돌방 내부의 길이와 동일하다. 역시 남쪽 단벽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앞트기식으로 만들었다. 출토유물로는 남쪽 입구에 가까운 서벽 아래에서 광구호(廣口壺) 1개가 수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