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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소장유물
유적명 괴정동유적(槐亭洞遺蹟)과 전대전출토농경문동기(傳大田出土農耕文銅器 )
위치 대전광역시 서구 내동 39-27번지 민웅기[閔雄基]씨댁내
시대 청동기시대
소유자
지정종별번호
출처
작성일 2005-02-25 00:00:00.0
조회 12830
첨부
상세정보 괴정동유적은 대전광역시 서구 괴정동 224-14번지(현재 대전광역시 서구 내동 39-27번지 민웅기[閔雄基]씨댁 내) 한국통신 뒷산에서 1967년 7월 밭을 갈던 농부가 발견한 돌널무덤[石棺墓]이다. 유적은 남북 3.3m 동서 2.8m 깊이 2.7m가량 풍화된 화강암반을 파내려가서, 길이 2.2m 폭 0.5m 깊이 1m 크기의 돌널구조를 만들었다. 돌널무덤의 장축은 남북방향인데, 바닥에는 돌을 깔지않았다. 바닥에서 얇은 나무조각 썩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돌방 내부에 간단한 목관시설이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돌널위의 빈 공간을 커다란 돌들로 채웠으며, 지상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었다.
출토유물은 덧띠[粘土帶]토기 1점, 검은간긴목단지[黑色磨硏長頸壺] 1점, 대쪽모양동기 3점, 방패모양동기 1점, 구리방울 2점, 거친무늬구리거울[多 粗文鏡] 2점, 뚜껑모양동기 1점, 천하석제 곱은옥 2점과 작은옥, 한국식동검 1점, 간돌살촉[磨製石鏃] 3점이 있다. 한국식동검(길이32.4cm)은 등대의 마연부분이 중간의 마디 이하로 내려오지 않은 형식인데, 한국식동검가운데 고식검에 속한다. 거친무늬구리거울 2점(직경11.3cm, 8.0cm)은 기본적으로 평행사선문으로 매운 삼각형을 전면에 배열했는데, 하나는 내·외원권대로 구획하고 여기에 그러한 문양을 배열하기도 했다.
대쪽모양동기 3점(길이23.0cm내외)은 대나무마디 2절을 쪼갠 형태이다. 중간에 마디가 상하 2구로 구분되는데, 각구마다 주위 윤곽을 따라 네모난 세선문대(細線文帶)를 이중으로 돌려서 구획했다. 한가운데는 새끼줄을 꼬아 만든 형태의 둥근 꼬리를 하나씩 매달아 두었다. 주조기술이 매우 우수하고, 기하학적 무늬가 대단히 정교하다. 이것은 주술적 종교의식에서 사용된 장신구의 일종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아산 남성리와 예산 동서리와 같은 충남지방에만 발견되는 특이한 형식이다.
방패모양동기는 윗부분은 각이 지고, 아래쪽은 원형으로 마무리되었다. 동기의 세로와 전체 윤곽을 따라 좁은 격자문대가 있으며, 상부에는 네개의 네모난 구멍이 뚫려있다. 끈으로 매달아 오랫동안 사용하였던 것처럼 마모된 흔적이 있다. 전대전출토농경문동기의 형태와 매우 가깝다.
뚜껑모양동기(직경20.6cm)는 한쪽이 오목한 접시모양이며, 둥글게 나온 면 한쪽에 치우쳐서 고리를 붙였다. 이같은 형태는 요녕지방의 청동기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예산 동서리·대구 평리동에도 출토된 바 있다.
구리방울 2점(길이11.4cm, 11.2cm)은 윗부분에 반원형 고리가 것으로, 방울 몸체는 타원형이다. 몸체에 혀는 없으나, 매달기 위한 구멍이 나있다.
돌살촉 3점(길이6.8cm∼7.4cm, 폭2.0cm)은 평면삼각형 돌살촉인데, 촉신이 매우 얇으며 단면이 편육각형이다. 청동기와 함께 오랫동안 공반되는 유물로서 의기적인 성격이 강하다.
천하석제 곱은옥 2점(길이3.4cm, 3.2cm)은 반원형의 옥 가운데를 둥글게 파낸 것으로 한쪽에 구멍을 뚫었다. 귀걸이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부여 연화리를 비롯한 돌널무덤유적에서 청동기와 같이 출토한다.
검은간긴목단지(높이22.0cm)는 바닥이 납작하고 몸체가 둥글며 길다란 목을 가졌다. 고운 흙으로 빚어 두께가 얇으며, 기면을 마연한 부장용토기이다. 돌널무덤에서 자주 나타나며, 시대가 내려와 초기철기시대의 구덩식무덤에서도 발견된다.
덧띠토기(높이17.0cm)는 납작한 바닥에 거친 흙으로 투박하게 빚어 올렸으며, 구순부(口脣部)에 점토의 테두리를 붙힌 2중구연토기(重口緣土器이)다. 청동기·긴목단지·돌살촉이 공반하는 토기이다.
이 유적은 한국식동검이 출토하는 유적가운데 비교적 오래된 것에 속한다. 뚜껑모양동기는 요녕지방과 문화교류가 있었던 사실을 말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대쪽모양동기의 정밀한 기하학적 무늬는 예산·아산지방 돌널무덤출토례에도 확인되는데, 충남지방 청동기제작 기술의 높은 수준을 말해준다. 이렇게 다양한 청동기의 출토와 그 높은 수준의 제작기술은 괴정동돌널무덤의 피장자가 당시사회의 수장, 예를 들면 군장(君長, chiefdom)급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입증한다.
[전대전출토농경문동기]
전대전출토농경문동기는 청동기시대 후기단계에 속하는 것인데, 크기는 대략 7.3cm 12.8cm정도이다. 우연히 대전의 한고물상에서 구입할 정도로 언뜻보아 하찮은 청동조각에 지나지 않다. 현재 진품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 전시하고 있다. 괴정동돌널무덤출토 방패모양동기와 형태가 유사한 까닭에, 그 출토지점은 괴정동-탄방동-둔산동일대가 아닌가 한다.
유물의 현존상황은 하부가 손실되었고, 상부는 양쪽 어깨에 돌기가 있다. 상부의 상단에 방형구멍이 6개 뚫려있고, 한쪽 중간부위에 끈을 꼬은 것 같은 고리가 한개 붙어 있다. 고리의 부착면은 새가 나무에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반대면은 남자가 밭을 갈고 여성이 무언가를 토기에 담고 있는 모습을 시문했다. 그러한 내용은 마치 당시 파종제(播種祭)와 추수제(秋收祭)의 기원내용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고, 더욱이 새모양의 묘사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기 위한 제사의식의 주술적(呪術的) 의미를 함축한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농경문동기는 당시 농경사회에 관련해 행해진 각종 제사의식에 사용된 주술적 의기(儀器)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