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사람이야기

음악 치유사 유병규 교수

2021.10
  • 등록일 : 2021-09-28
  • 조회수 : 2076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는 평일 오전, 동구의 한 장애인시설에 동요 ‘개구리’가 울려 퍼진다.


안으로 들어가니 강사의 기타 반주에 맞춰 장애인 예닐곱이 의자에 앉아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방 한쪽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딴청을 부리는 소년이 있는가 하면 꼬마 하나는 아예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들을 보며 싱긋이 웃던 유병규 교수(59)가 기타와 하모니카로는 모자랐던지 슬그머니 오션드럼을 꺼내 든다. 탬버린처럼 둥근 악기에 물고기와 조개껍데기 같은 것이 붙은 것도 신기한데 살며시 움직이니 시원한 파도 소리가 났다. 오밀조밀 모여 있던 방을 순식간에 해변으로 옮겨 놓은 느낌이다.


이때, 방바닥을 뒹굴던 중증장애인 준우(가명·10)가 벌떡 일어나 파도 소리를 내던 유 교수의 옆자리에 앉더니 “개굴개굴 개구리~”를 따라 부른다.


음악재활심리상담 전문가인 유병규 교수는 대전대 보건의료대학원 객원교수 외에도 예술심리상담사, 음악치료 강사 등 여러 직함을 가지고 있다.


젊은 적에는 YMCA,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대전기독교사회운동연합,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였으며 직접 이벤트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대학에선 독문학을 전공했다.


IMF 이후 사업 실패와 단기기억상실에 시달리며 알코올 의존증에 빠지기도 했단다. 술에서 깨는 것이 두려워 몇 년을 종일 술에 취해 지냈다고 한다. 장애인들과 기타 치며 웃고 노래하는 지금의 환한 얼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과거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2007년 요양병원에서의 작은 음악회였다.


“임종을 앞둔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어요. 병원 로비에서 플루트, 장구를 전공한 형제들과 기타를 치며 어머니 좋아하시는 ‘목포의 눈물’을 불러드렸더니 환자뿐 아니라 가족, 의료진까지 모두 좋아했어요. 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매주 토요일 요양병원 로비에서 형제들과 여러 악기를 가지고 작은 음악회를 하면서 저도 차츰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죠.”


음악을 통한 심리 상담과 치료 레크리에이션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유 교수는 오십이 넘어 음악학 석사와 보건학 박사공부를 했다.


그는 “젊은 시절의 고통과 방황, 어머니와의 요양병원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노래와 악기연주는 취미에만 머물렀을 것”이라며 “코로나19 상황에서 더 외로운 노인, 장애인들과 만나 함께 노래하고 악기를 다루면서 교감하는 시간이 내게도 행복”이라고 했다.


음악 전공자와 대학원생에게 강의하기도 바쁜 유 교수지만 노인·장애인이 있는 곳이면 대전뿐 아니라 논산, 금산, 옥천, 계룡 등 어디든 달려간다.


그는 “노인이나 장애인을 대상으로 수업하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무언가를 많이 가르치려는 욕심 때문”이라며 “그들이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음악을 통해 교감하다 보면 감정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음악을 통해 나를 치유한 경험을 나누니 즐겁다”며 “혼자 노래하고 기타 치며 하모니카 불고 바쁘지만 치매 노인도, 중증장애인도 나를 기억해주니 행복하지 않느냐”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