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립미술관 광장>
여유를 느끼는 데 필요한 시간 ‘30분’
분지가 주는 아늑함 때문일까? 이 도시에 사는 이들이나 타지인들은 대전과 가장 가까운 형용사로 ‘여유롭다’를 꼽는다. 여유로움은 하천과 산 온천 호수 등 고루고루 어우러진 자연환경과 모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뿜어져 나올 것이다.
쫓기며 바쁘게 사는 이들이 잠시나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우리 대전, Daejeon is 여유롭다.
<유등천 산책로>
도심을 가로지르는 3대 하천변에서는 자전거를 타거나 가볍게 산책을 할 수 있고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인근 산에서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가벼운 등산을 즐길 수 있다. 도심 속 빌딩 숲 사이로 곳곳에 조성되어 있는 공원에서는 근처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손에 커피 한 잔을 들고 담소를 나누거나 가벼운 산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 대전의 여유로운 모습이다. 눈에 보이는 풍경뿐 아니다. 사람 성향도 그렇다. 흔히들 충청도 사람들은 ‘느리다, 속내를 잘 내비치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이는 내 생각을 강요하기 보다는 상대의 의견을 좀 더 들여다 본 뒤 무언가를 결정하려는 배려의 마음 쪽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관계에서도 한발짝 여유를 갖는다는 이야기다. 흔히 듣는 “그류~”, “그러든가~”라는 대답이 처음에는 어정쩡하고 확실하지 않아 ‘대체 뭐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 적응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말속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안다. ‘당신이 괜찮다면 나도 괜찮아요’라는 여유의 마음.
<한밭수목원 서원>
대전예술의전당으로 직장을 옮긴지 13년째가 되어간다. 아이 학교 문제와 아내의 직장 문제로 여태 주말부부로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을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편안함과 여유로움 때문일 것이다. 편안함의 8할은 가까운 곳에서 마주하는 수려한 자연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수년 전 오전 업무를 후다닥 해치우고 오후 조퇴를 한 후 장태산 휴양림을 찾은 적이 있다. 순전히 신문에 실린 기사와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당시 오래 묵은 일로 머리가 묵직했었는데 바로 그날 그 쌓여있던 일을 오전 중 시원하게 털어내게 되어 머리도 식힐 겸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신문을 통해 알게 된 곳은 바로 장태산 휴양림이었다. 특히 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이 내 맘을 사로잡았다.
<한밭수목원 동원>
사진에는 메타세쿼이아가 시원하게 하늘로 쭉 뻗어있었다. 메타세쿼이아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나무다. 하늘로 곧게 솟은 모습이 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시원한 메타세쿼이아만으로도 호감이 가는 중이었는데 특이한 게 하나 더 눈에 들어왔다. 바로 메타세쿼이아 중간 높이에 설치해 놓은 인공의 둘레길이었다. 일명 장태산 스카이워크라 불리는 길. 와! 날아다니는 새를 볼 때마다 늘 부러웠는데. 땅바닥을 디디고 다닐 수밖에 없는, 그래서 늘 고개를 쳐들고 올려봐야만 하는 서러움을 그 공중에 설치된 둘레길이 어느 정도 해결해줄 것 같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걸어 다닐 수 있다니. 그것도 새들처럼 공중에서. 그래서 바로 결심했다. 언젠가 꼭 한번 들르리라고. 사진 속 저 공중 둘레길을 내 발로 걸어보리라고. 그렇게 ‘장태산’이란 이름과 신문 속 사진 한 장을 뇌 속 깊숙이 딱풀로 단단히 붙여놓았고 그날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장태산자연휴양림 스카이워크>
대전이란 곳은 희한하다. 동서남북 어디로든 자동차로 30~40분만 달리면 느닷없이 호젓한 시골이 나타난다. 무서운 속도로 벌판을 잠식해가는 아파트 건설 현장을 지나자마자 호젓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그날 장태산으로 가는 길 옆으로는 갑천이 한가로이 흐르고 도로 옆 가드레일엔 부지런한 농부가 가지런히 세워놓은 참깨가 따가운 햇볕에 고소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상하좌우로 지루할 틈 없이 방향을 틀어가며 시골길을 구불구불 달렸다. 저수지를 지나고 시골의 한적한 중학교를 지나 드디어 장태산 입구에 도달했다. 주차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주차한 후 카메라 둘러메고 제일 먼저 사진 속 스카이워크를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길은 메타세쿼이아 중간 높이에서 나무 사이사이로 구불거리며 이어졌다. 아쉬운 건 길이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 둘레길 입구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나왔고 그 끝은 타워와 연결되어 보다 높은 곳으로 발걸음을 인도했다. 나선형 길을 따라 대여섯 바퀴 돌며 꼭대기로 올라가자 탁 트인 경관이 펼쳐졌다. 멀리 산등성이가 시원한 바람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내 마음에도 여유의 바람이 절로 흘러 들어왔다. 오후 시간을 제치고 오길 잘 했구나 싶었다. 그날 스트레스로 찌든 내 몸의 세포는 그렇게 상쾌한 숲속의 바람으로 묵은 때를 털고 있었다. 피톤치드니 뭐니 전문용어를 들이댈 필요도 없이 내 몸은 그것이 얼마나 좋은 공기인지 대번에 알아챘고 언제 또 이런 공기를 마실 수 있을까 싶어 허파는 뻐근할 정도로 숲의 바람을 가슴 가득 밀어 넣었다. 마음 속 깊은 여유를 느끼기 위해 걸린 시간은 30분. 차로 이동하면서 느꼈던 여유로움까지 치자면 소요 시간은 더 짧았다. 여유로운 도시 대전이 좋아 주말부부는 아무래도 은퇴하는 날까지 이어질 것 같다.
<상소동 산림욕장>
글 송현석(대전예술의전당 아카데미 담당) 사진 최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