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전국 도심야경 8경의 하나로 선정되는 등 꾸준히 그 역할과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실질적인 원도심 관광객 집객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콘텐츠다.
시민공모 우수콘텐츠와 함께 창작센터, 미술관, 갤러리 등을 통해 지역 예술가들의 미디어아트, 회화, 사진, 웹툰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도 스카이로드의 메인 스크린을 통해 즐길 수 있으며 미디어아트전, 대청호오백리길 특별영상전 등 다채로운 디지털 갤러리를 콘텐츠를 운영하고 있다.
대전중앙시장의 전신으로 공식적인 기록에 의하면 1911년 일본인 시마쯔구타로(島津久太郞)에 의해 설립되었다. 주로 생선과 과일, 채소류의 경매 및 위탁판매가 이루어졌으며, 철도를 타고 부산과 마산, 목포 그리고 인천과 원산까지 유통망이 이어져 있었다. 인근의 인동시장과 달리 거의 철저히 일본인들이 상권을 쥐고 있던 시장이었다.
1904년 지금의 동구 대동에 목조 간이역으로 시작하여 1919년 한 차례 개축을 거쳐 1928년6월 현 위치에 서구 중세풍의 2층 역사로 신축되었다. 1층은 대합실과 역무실, 우체국 등이 있었고 2층에는 고급 식당이 입주했다. 역사 중심부의 양쪽은 탑처럼 둥근 돔을 세웠으며, 그 한가운데는 큰 원형 시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후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되었으며, 정전 후 미군의 원조를 받아 1958년 평지붕에 철근콘크리트 라멘조의 3층 역사가 다시 지어졌다. 당시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다. 기본 모듈과 입면 구성이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았으나, 현재는 그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관련콘텐츠 : 고.김재현기관사, 대전발 0시50분, 가락국수, 성심당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까지 대전의 철도 노동자를 위해 조성된 관사촌으로 현재 약 40여채의 관사들이 남아 있다. 당초는 대전역을 중심으로 남관사촌과 북관사촌이 먼저 형성되고 가장 나중에 소제동 철도관사촌이 동관사촌으로 지어졌는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모두 파괴되고 동관사촌인 소제동의 철도관사들만이 남게 되었다. 하나의 지붕 아래 두 세대가 거주하는 구조(이호연립주택)로, 외관은 목조비늘판이나 모르타르로 마감된 관사들이 혼재되어 있으며, 대부분 6~7등급 관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부선 고속철도(KTX)의 개통과 함께 그 또한 사라졌다.
근대산업화시대와 중남 및 대전의 행정중심지였던 원도심에서 인쇄산업은 중요한 지역산업 중에 하나였다. 한의약거리는 조선시대 3대약령시중 하나인 공주의 약령시가 폐쇄되면서 대전으로 약령시가 옮겨옴에 따라 대전이 한약재 유통공간으로 번성하게 되었다. 현재의 한의약거리에 대한 역사의 시작으로 볼 수 있으며 이 두곳은 현재도 지역의 비교우위 산업의 하나로서 중동, 정동, 삼성동 지역에 약 500여개의 관련업체가 밀집되어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주변에 선화로196번길은 골목체험이 가능하며, 칼국수, 삼계탕, 두루치기, 설렁탕, 중국음식점 등 대전 맛집들이 고루 분포되어 있어 걷는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다.
지금의 중앙시장 즉 대전어채시장이 일제강점기 일본들의 시장이었다면 인동시장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전통시장으로 주로 조선인들이 이용했던 곳이었다. 정기적으로 우(牛)시장이 서기도 했으며, 1919년 대전의 첫 3・1만세운동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