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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 복지

  • 제목 자랑스런 3.8 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 결실
  • 담당부서 자치행정과
  • 작성일 2018-11-01

암울한 1950년대, 분단 이데올로기를 악용해 독재적 정권 유지에만 급급한 이승만과 자유당의 실정이 나라 곳곳에서 곪아터집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재란 필연적으로 무능과 부정부패로 연결됐는데요. 이승만 정권은 여기에 이데올로기와 프로파간다까지 더하며 독재를 획책해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됐습니다.

결국 1960년 꾹꾹 눌리던 국민의식이 폭발하며 4.19 혁명이 일어났고, 이승만이 하와이로 도주하면서 부정부패 정권은 종말을 맞게 되는데요.

4.19 혁명
[진압군 탱크에 올라탄 4.19 혁명 시민들]


대한민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4.19 혁명의 기폭제 중 하나가 바로 우리 대전에서 일어난 자랑스런 3.8 민주의거라는 사실!

당시 이승만 정권의 폭정에 맞서 가장 먼저 분연히 일어난 것은 학생들인데요.

먼저 1960년 2월 28일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이 학원자유 보장과 부정부패 타도를 외치며 도심에서 시위를 전개했지만 경찰 진압으로 와해되면서 들불이 꺼지는 듯 했습니다.

2.28 대구 민주의거
[2.28 대구 민주의거 때 행진 중인 학생들]


하지만 대전고와 대전상고 학생들이 중심이 돼 3월 8일 시내에 모여 결의문을 선포하고 대정부투쟁을 선언하며 불씨를 살렸는데요.

이번에도 경찰이 학생들을 구타하고 가담자를 무차별 연행했지만, 이에 분개한 더 많은 학생과 대전시민이 10일 폭력경찰에 맞서 투석전까지 벌이면서 민주화항쟁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도화선이 됐습니다.

3.8 민주의거
[경찰에 맞서 싸우는 3.8 민주의거 학생들] 


이어 3월 15일 선거에서 수세에 몰린 이승만과 자유당이 보란 듯이 부정선거를 자행했고, 다시 마산에서 격렬한 시위가 있었는데요. 이 때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혀 숨진 채 버려진 것이 발견되면서 분노한 국민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 4.19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최투탄에 피격돼 사망한 김주열 군을 보도한 당시 신문
[최투탄에 맞아 숨진 김주열 군을 보도한 당시 신문]


이처럼 대전시민의 3.8 민주의거가 우리나라 민주화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지만 4.19 혁명에 가려지면서 그 가치를 널리 알리지 못했는데요.

이에 대전시는 그동안 3.8 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한 범시민추진위원회 결성, 시민결의를 담은 서명부 전달, 정치권 이슈와 드 다양한 노력을 부단히 전개했습니다.

지난 26일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을 찾아가 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 서명부를 전달한 허태정 대전시장
[지난 26일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을 찾아가 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촉구 서명부를 전달한 허태정 대전시장]


이 같은 노력이 최근 결실을 맺어 30일 국무회의에서 3.8 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을 담은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이제 이 규정은 마지막 공포절차만 남겨두고 있는데요.

3.8 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은 충청권에서 최초이며, 이는 그동안 대전시민의 민주화 공헌을 인정받는 뜻 깊은 것입니다.

대전시는 3.8 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에 맞춰 사료 확보 및 전자정보화 추진, 기념사업 개편 등으로 역사적 의의를 정립할 방침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대전시 자치행정과(042-270-4116)으로 문의하세요.

공공누리 제1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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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신 사항은 대전시 콜센터 042 - 120 으로 문의주시면 친절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