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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3·1절 기획]소년 독립운동가 정완진 옹이 전하는 말
  • 담당부서 복지정책과
  • 작성일 2014-02-28
  • 공공누리 공공누리 이 창작한 [3·1절 기획]소년 독립운동가 정완진 옹이 전하는 말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비상업적 이용가능-변형가능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저작권 정책]을 확인하십시오.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어떻게 총리라는 인간이 그렇게 떠들 수 있나? 아직 살아있는 증인으로서 분노를 안 할 수 없어요.”

일본을 향해 쏘아붙이는 정완진 옹(87, 유성구)의 노기어린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습니다.

자신의 행적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부담스럽다며 말을 아끼던 정완진 옹은 역사 왜곡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자세를 고쳐잡습니다.

역사에 대해 얘기하는 정완진 옹 
[역사에 대해 얘기하는 정완진 옹]


정완진 옹은 1940년대 대구지역 항일단체 태극단에 몸을 담고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입니다.

당시 그의 나이 만 16세, 대구상업학교 3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친일 배반자의 태극단 밀고

태극단은 1942년 5월 대구상업학교 재학생을 중심으로 조직된 항일 결사조직으로, 일제를 원수로 규정하고 문무 양면으로 힘을 키워 독립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직이 역량을 채 갖추기도 전인 1943년, 배반자의 밀고로 태극단원들이 대거 체포됐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왜놈 순사가 오더니 붙잡아가더라고, 집에는 통보도 안됐어요.”

당시 정완진 옹은 학업을 위해 대구의 외가로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대구경찰서로 끌려간 정완진 옹은 무려 6개월 동안 혹독한 고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천장에 달아매서 때리고, 물을 먹이고….”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배가 고픈 것이었어요, 돼지도 잘 안먹는 콩찌꺼기를 주는데, 독립운동 한 사람을 일부러 고통주려고 그러는 것이었지요.”

검거된 태극단원들은 모진 고문을 받다가 이듬해서야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죄목은 ‘치안유지법’ 위반.

정완진 옹은 당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풀려났지만, 핵심 단원들은 법정 최고형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러야 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당시 정완진 옹을 돌보던 외할머니가 손자의 체포와 고문 소식에 충격을 받아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런 고초를 겪었음에도 정완진 옹은 “내가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 아닌데 애국지사 소리를 듣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애써 자신을 낮췄습니다.

정완진 옹은 1963년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정완진 옹은 영어를 공부하고 대구지역의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교육자로 살아왔습니다.

국내외 역사 왜곡 통탄할 일

“누구라도 심판받아야 하는 것이 역사입니다.”

정완진 옹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역사 왜곡에 대해 우려와 함께 ‘일본 지도층은 도덕적으로 형편없는 인간들’이라며 분노를 드러냈습니다.

정완진 옹은 “위안부와 관련된 망언이 오늘도 신문에 나오더라”며 “일부 극우세력들은 역사에 대한 인식도 없고 개망나니”라고 거친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미화하거나 친일파를 두둔하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정완진 옹은 최근 전개되고 있는 우리나라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도 직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소망에 대해 정완진 옹은 “내게 묻는다면 민족이 통일되는 것을 보고 싶다”며 “그런데 나 죽을 때까지 볼 수 있겠나”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생존 애국지사와 유족에게 감사 인사

대전시는 제95주년 3·1절을 맞아 정완진 옹, 조일문 옹, 정낙진 옹 등 생존 애국지사와 고(故) 최호 애국지사의 후손을 찾아가 감사의 뜻과 위문품을 전달했습니다.

제95주년 3·1절을 맞아 정완진 옹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와 위문품을 전하는 신상열 대전시 복지정책과장.
[제95주년 3·1절을 맞아 정완진 옹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와 위문품을 전하는 신상열 대전시 복지정책과장]

 

한편, 대전에는 현재 178명의 항일 애국지사 유족이 살고 있습니다.